앙상하기만 한 그렇지만 무거운
- 알베르토 자코메티 & 어빈 얄롬 '실존주의 심리치료' - |
|
|
님과 de tour, 우리의 열 번째 발걸음이에요.
님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고 한다면 누가 떠오르나요? 많은 분들이 보통 파블로 피카소를 떠올리실 텐데요. 하지만 그런 피카소마저도 질투한 20세기의 미술가가 있다면 믿으실 수 있나요?
바로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가 그러했는데요. 20세기 가장 위대한 조각가로 꼽히는 자코메티에 대해 흥미롭게 접근해 보겠습니다. |
|
|
알베르토 자코메티. 그는 자신의 작품처럼 일생을 예술적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지오반니 자코메티는 신인상주의, 야수파 계열의 화가였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코메티는 어릴 적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었는데요. 마찬가지로 그의 형제들 중 동생 디에고는 수제 가구 제작자가 되었으며, 막내 브루노는 건축가로 활동하게 된 것을 보면, 상당한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것으로 볼 수 있죠. |
|
|
자코메티는 1919년에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집을 떠나 제네바의 미술학교로 향합니다. 하지만 여러 문제로 1년 만에 그만둬버렸죠. 그럼에도 자코메티는 기죽지 않았습니다. 그의 옆에는 밝은 화풍을 구사하는 미술가이자 온화한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는 1920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여러 작품들을 감상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자코메티가 그 특유의 무거운 주제성을 가지게 된 계기는 1921년 그의 지인인 피터 판 뫼르소의 죽음을 목격하고부터였습니다. 심지어 뫼르소는 베니스의 기차 안에서 자코메티와 마주한 체로 갑작스럽게 죽어버린 터라, 자코메티에게 뫼르소의 죽음은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죠. |
|
|
Hour of the Traces, Plaster, wood and steel, 686 × 362 × 286 mm, 1932 |
|
|
이후로 자코메티는 우리에게 익숙한 파블로 피카소 등과 교류하며 입체파와 원시 미술에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초현실주의 선언’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의 초청에 한동안 초현실주의 사조를 이끌기도 했죠. 그러나 그에게 여전히 ‘죽음’이라는 주제는 머릿속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는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모두 겪은 세대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초현실주의가 말하는 꿈의 세계보다는 죽음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미술가의 무의식보다는 길거리를 걷는 이름 모를 행인들이, 지난날 죽은 뫼르소의 눈빛에 끌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보이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려는 실존주의 행보를 걷게 되는데요. 훗날 이 선택이 그를 실존주의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미술가로 평가받게 만들며,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주게 되었죠.
|
|
|
“실례지만 여기서 당신을 종종 보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돈이 하나도 없는데 제 술값 좀 대신 내주실 수 있습니까?”
1939년의 어느 날 밤, 카페 플로르에 앉아 생각에 빠져있던 자코메티에게 한 남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자코메티는 기꺼이 술값을 내주고 그와 즐겁게 대화를 이어갔는데요. 이후 그들은 둘도 없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미술가 자코메티와 사상계의 ‘제임스 딘’이라고 불리는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첫 만남이었죠 |
|
|
님은 실존주의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실존주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점차 사회 속에서 인간이 개성을 잃고 소외감을 느끼는 현상이 심각해지자,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선언과 함께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한 철학 사상이자 문예사조입니다. ‘실존’이란 아주 비약적으로 설명드리자면, ‘지금-여기에 있는 순수한 ‘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가서야 보이는,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도 또는 대치하지도 않는 오직 나라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죠.
본래 자코메티가 매료됐었던 철학은 실존주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실 현상학에 빠져있었는데요. 현상학이란 의식에 드러나는 현상에 대해 그 본질을 직관에 의해 파악하려는 학문을 뜻합니다. 현상을 이성적 논리를 통해 파악하려는 구성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이었습니다. 초현실주의 또한 이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요. 예술을 통해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추구하던 기존의 흐름에 반해, 예술가의 무의식을 지향했죠. 따라서 현상학에 관심이 많았던 자코메티는 자연스럽게 초현실주의에 빠지게 되는데요. |
|
|
Diego, Oil on canvas, 610 × 498 mm, 1959 |
|
|
그러나 ‘죽음’과 ‘사람’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했던 자코메티에게 초현실주의의 한계는 명확했습니다. 이미 평단에는 초현실주의의 대가로 인정받은 시점, 그런 그 앞에 마침 나타난 것이 실존주의 철학이었습니다. 더구나 실존주의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 사르트르 역시 현상학의 계보를 잇고 있었기에, 자코메티는 실존주의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실존주의를 전향한 자코메티의 작업은 사뭇 달라졌습니다. 원래 기억이나 상상에 의존해 제작하던 초현실주의 스타일을 벗어던지고, 다시 모델을 현실 앞에 세우고 보며 그리는 사생으로 회귀하게 되었죠. |
|
|
님은 그러한 실존주의 철학을 적용해 만들어진 심리학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실존주의 심리학 그리고 실존주의 상담은 그 이름부터 실존주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요. 그중 어빈 얄롬(Irvin D. Yalom)이 명명한 '실존주의 심리치료(Existential Psychotherapy)’는 많은 실존적 심리치료를 주창한 다른 심리학자들과 달리, 특히 ‘죽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얄롬은 그의 저서 ‘태양을 정면으로 응시하라’에서 “태양이나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다”라는 라로슈푸코의 잠언을 인용하였는데요. 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불안은 대부분 죽음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죽음, 그것은 개인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두려운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죽음을 항상 인식하면서 살 수 없으며, 항상 죽음의 공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요. 누군가는 돈을 벌거나, 자식을 통해 미래를 투사하려 합니다. 또 누군가는 종교에 열렬히 빠지게 되는 이유가 사실은 죽음에 대한 방어기제일 뿐이었다는 것이죠. |
|
|
The Square I, Bronze, 20.78 x 63.47 x 43.59 cm, 1948 |
|
|
얄롬은 실존주의 심리치료의 전제는 모든 인간이 필연적으로 죽음/ 자유/ 소외/ 무의미, 네 가지의 조건에 놓여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중 죽음은 가장 절대적인 개념이며, 죽음에 대한 불안은 나머지 3가지 자유, 소외, 무의미성의 도처에 깔려있다고 보았죠. 이를 네 가지 궁극적 관심사라고 칭합니다. 얄롬은 그중 죽음을 제외한 세 가지 궁극적 관심사는 죽음 불안으로 인해 왜곡된 불안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실존주의 심리치료의 목표는 치료자와 상담사가 위 궁극적 관심사를 깊게 들여다보며, 인간의 죽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직면하여 극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치료법은 상당히 흥미로운 만큼 이색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소외에 대해 살펴보자면, 우선 그는 소외를 여러 유형으로 나눕니다. ‘대인관계’ 소외는 자신과 타인 간의 큰 간격을, ‘개인 내적’ 소외는 개인 내적 통합의 결여를 의미한다고 말했는데요. 이들에 비해 더욱 깊은 ‘실존적’ 소외는 자신과 타인 간의 간격뿐 아니라, 죽음을 통해 자신과 세상이 분리되는 심연을 의미한다고 말했죠. 이를 바탕으로 치료자는 자신이 느끼는 소외감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인식해야 합니다. 소외감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지 혹은 홀로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죽음으로 인한 불안으로 느끼는 것인지 말이죠. 이렇듯 얄롬은 소외감을 점진적으로 파고 들고 직시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 것이죠. |
|
|
이러한 실존적 심리치료의 방식은 자코메티가 인간상을 제작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조각 작품들은 점토를 붙여가면서 형태를 만들어 가는 ‘소조’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요. 자코메티는 이에 밖에서 안으로 깎아 만드는 ‘조각’ 방식을 함께 사용하는 독특한 방식을 활용합니다. 그는 모델을 보면서 점토 상을 파고, 깎고, 다듬고, 다시 점토를 붙이고 또 파내는 일을 끝없이 지속했습니다. 자코메티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 방식을 ‘걷어내는 일’이라고 칭했는데요. 그 모습은 마치 인간의 살을 벗겨내는 것처럼 보였죠. 그 결과 그의 동상은 비쩍 마르고 가녀린 입상들은 점점 더 거칠고, 부식된 것만 같은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는 이러한 자신만의 작업을 통해 인간 조각상 안에 보다 본질적인 인간, 즉 생명을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체의 군더더기가 제거된 상태에서 발현되는 대상의 고유한 리얼리티를 표현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죠. 대상의 고유성이 드러난 순간, 작품을 창작한 자코메티는 완전히 뒤로 밀려나며, 그 자리에는 조각상이 지닌 무한한 고독함만이 남게 됩니다. 이것이 자코메티가 바라본 인간으로서 존재함의 현실이자 고독이자, 실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
|
|
Very Small Figurine, Plaster reworked with a knife and traces of colour, 4.5 x 3.0 x 3.78 cm, 1937 - 1939 |
|
|
자코메티의 인물상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로는, 등장하는 그들이 대부분 혼자라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앞서 설명한 자코메티의 작업 방식과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얇디얇은 몸체로 하늘을 향해 길게 우뚝 선 조각상들은, 주변의 어떠한 요소들과의 관계를 단절한 체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며 외롭게 서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자신들이 딛고 있는 황폐하고 무겁기만 한 땅만 닿아있을 뿐이죠. 여러 사람이 나오는 조각상들도 간혹 존재하지만, 이 작품들의 초점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서있는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인간들은 같은 땅에서 다른 삶을 고독하게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자코메티의 작품을 영화에 빗대어 이해해 볼까요? 영화는 사실 상상력으로 이뤄진 예술 매체입니다. 영화는 잘 알려진 것처럼 정지한 사진들의 연속인데요. 우리의 감각은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정지한 사진과 다음 사진 간의 간격을 상상력을 통해 메꾸며 이를 연속적인 장면으로 인식하죠. 그러니까 즉 영화는 공간과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진 것처럼 제작된 가상과 같습니다. 자코메티는 이러한 가상을 부정합니다. 우리에게 보이는 그대로 즉 인식된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는 그것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기를 원했죠. 어쩌면 이것은 익숙한 일상 혹은 우리에게 이미 체화된 법칙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자코메티의 시선에는, 빈 공간에 배치된 사물과 사람이 꽉 찬 공간에 겨우 자신의 자리만을 점유하려 애쓰고 있는 사람만이 남아있습니다. |
|
|
자코메티는 이를 ‘거리감’을 통해 재현하고자 합니다. 관람객이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도 다가설 수 없는 조각. 이미 거리가 고정되어 있어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 자코메티는 거리감을 표현하기 위해, 조각상의 볼륨을 완전히 제거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제거된 공간은 관람자에게는 다시 채워질 수 있을 것만 같은 가능성의 공간으로 보이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이것은 마치 절대 메꿔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역설적이게도 생의 고독함을 느끼게 만들어 주죠. 그렇게 자코메티가 집중했던 ‘죽음’이라는 키워드는 ‘거리감’이라는 새로운 관념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조각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회화에서만 적용되었던 ‘원근감’을 부여하는 작업으로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자코메티의 조각이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
Walking Man I, Bronze, 180.49 x 26.97 x 96.98 cm, 1960 |
|
|
이러한 자코메티의 관점은 다시 얄롬의 실존주의 심리치료로 넘어와 ‘자유’와 ‘책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세계나 삶, 인생 설계, 선택에 자유를 갖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필연적으로 ‘책임’을 수반합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히어로 캐릭터, 스파이더맨의 명대사처럼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실제로 인간의 자유란 생각보다 큰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존주의 심리치료에서 ‘자유’란, ‘외부적인 구조의 부재’를 말합니다. 즉 자유를 가지고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대신, 인간은 자신의 삶을 그 누구에게도 책임 묻지도 못하고 홀로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이러한 배경 탓에 자유를 가진 존재인 인간은 항상 잠재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고독과 절망은 자유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봤을 때,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은 보다 결연하게 보입니다. ‘걷는 사람’은 자코메티 조각의 꽃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자코메티는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거리를 빠르게 쏘다니는 행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같은 거리를 공유하지만 서로를 빠르게 스쳐가는 사람들. 전쟁으로 주변인들이 죽어갔지만, 슬픔을 느낄 찰나도 없이 주어진 삶을 살기 위해 빠르게 걷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발걸음은 죽음 앞에 나약하기만 한 한없이 ‘가벼운’ 것이었지만, 동시에 삶을 위해 ‘무겁게’ 발걸음을 내딛는 인간은 실존 그 자체로 보였습니다. 자코메티는 행인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실존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걷는 사람’은 극단적으로 절망스러운 상황, 불안과 허무만이 진동하는 현실 속, 이를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개척해가는 인간 실존을 표현하게 된 것이죠. |
|
|
- 상하이 유즈 미술관의 알베르토 자코메티 회고전 전시장 설치 전경 - |
|
|
하지만 이것은 현실을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인간 실존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일은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죠. 그렇지만 이를 평생 외면하고 부정할 수만은 없습니다.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그만큼 남은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죠. 따라서 실존주의 심리치료에서는 항상 동행자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심리치료사가 그 동행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보았죠. 얄롬은 ‘치료자’와 ‘상담사’라는 구별을 폐지하자고 주장합니다. 치료자나 상담사나 결국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 “비극에서 면역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죠.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세계 2차대전과 같은 굵직한 사건이 없더라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우리 삶은 충분히 무거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얄롬이 동행자의 역할에 대해 말했 듯, “두 사람 사이의 깊은 인간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죠.
님 , 한번 상상해 볼까요? 만약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 옆에 누군가가 함께 있었다면, 그는 조금이라도 편안해 했을까요? 만약 님의 옆에 누군가가 동행한다면, 당신은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사실 앙상한 자코메티의 조각상과 같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우리는 그만큼 고독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연인, 친구를 통해 우리는 인간 실존을 조금이라도 감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코메티 조각상의 앙상하기만 한 그렇지만 무거운 발걸음. 우리라도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 피드백 하러 가기 ’를 통해 님의 의견을 전달해 주세요. 저희 de tour는 예술을 통해, 님과 함께 항상 동행할 것을 약속할게요. |
|
|
- Youtube, BFI-Giacometti (1967), 2016. 08.- |
|
|
님은 인간 조각상을 보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우리는 오늘 자코메티의 조각상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인간 조각상이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종교의 것이 떠오르실 겁니다. 십자가에 걸린 예수, 절에 모셔진 부처상과 같이 말이죠. 그러나 자코메티의 조각은 다릅니다. 어쩌면 반종교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종교의 것은 대체로 그 주변에 다른 종교적인 요소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성한 공간에 모셔져,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받고 있죠. 그러나 자코메티의 조각상은 처연하고 표독하기만 합니다. 살이은 도려나 있으며, 항상 홀로 서있기에, 감상하는 우리마저도 그 고독함을 느낄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자코메티의 인간상을 보다 보면 마치 종교의 것처럼 종종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걷는 사람’을 보면 그들의 당당한 시선과 보폭에 어딘가 감탄하고 침묵하게 되는데요. 탁한 흙빛을 띄는 위태롭기만 한 조각상에서 종교적인 감흥이 느껴진다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
어쩌면 사르트르가 자코메티의 조각상에서 발견한 빛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르트르는 다른 실존주의 철학가들과 다르게, 어떠한 운명이나 종교마저도 거부한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입니다. 그는 어떠한 것에도 의존하지 않은 체, 완전히 자유롭게 생을 살아가는 인간 실존 그 자체를 지지했었습니다. 마치 모든 것을 짊어진 초월자처럼 말이죠. 신이 존재하지 않는 사르트르의 세계에는 어떻게 보면 인간이 신의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사실 불교에서도 언급이 됩니다. 부처가 완전한 초월자임을 부정하는 불교에서는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숫파니파타’에 나오는 명구인데요. 아마 이때 부처가 말한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는 사람은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얼핏 반종교적으로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무엇보다 종교적으로 읽히는 자코메티의 발걸음. 오늘 님은 어떤 발걸음을 내디뎠나요?
|
|
|
오늘의 de tour의 길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벌써 de tour Newsletter가 열 번째로 님을 찾아뵀습니다. 24년 7월, 처음 발송한 ‘하지만 우린 모두 길 잃은 별이지 않나요?’편에서 저희는 “현실에서 불안해하는 젊음들. 그래서 급급하게 정해진 길을 걷게 되는 이들에게, 예술을 알아가면서 만큼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여정을 떠나길 바라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끝맺음을 냈었는데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오늘 발송해 드린 레터에도 비슷한 메시지가 담긴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저희 de tour는 따듯한 위로와 동시에 창의적인 여정의 동반자로 님의 옆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서로 부족한 점을 메꾸어 가며 나아가는 친구처럼 말이죠.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0번의 레터를 받는 동안, 저희가 부족한 점은 없었나요? 님의 의견을 전달해 주시면, 앞으로 더욱 나아진 컨텐츠로 대답하겠습니다. 항상 저희 de tour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