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무너지고 사람만이 남았다

- 우민호, <남산의 부장들> & 하인즈 코헛 '자기심리학' -

2024. 12. 27.

💭권력은 무너지고 사람만이 남았다

권력은 무너지고 사람만이 남았다

- 우민호, <남산의 부장들> & 하인즈 코헛 '자기심리학' -

2024.12.2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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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님과 de tour, 우리의 열세 번째 발걸음이에요.

님은 최근 개봉한 <하얼빈>(2024)를 보셨나요? 영화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우민호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 영화인데요. 단순 하얼빈 의거라는 사건이 아닌, 독립 투쟁 운동 아래 독립운동가들의 여러 인간적인 고민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영화입니다. 배우 현빈이 안중근 의사 역할을 맡으며,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계시죠.

우민호 감독은 현대 사회와 근현대사를 묵직하고 임팩트 있는 연출로 풀어내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진 영화감독입니다. 특히나 근현대사를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자칫 정치적으로 예민할 수 있어, 영화계에서는 제작이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어려움에 정면으로 돌진한 영화가 바로 우민호 감독의 전작, <남산의 부장들>(2020)이죠. 오늘은 이러한 <남산의 부장들>을 흥미롭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는 박용각(곽도원)의 코리아게이트 사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한국 정부의 2인자이자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용각은 미국의 국회의사당에서 한국 대통령인 박통(이성민)의 독재와 부정부패를 폭로하는데요. 이에 현 중앙정보부장인 김규평(이병헌)은 박통에게 자신이 일을 조용히 처리하겠다며, 미국으로 떠나게 되죠.

사실 규평과 용각은 박통의 혁명부터 함께 해온 동지이자, 친한 선후배 사이였습니다. 따라서 미국에서 용각을 찾은 규평은,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다소 차분하게 용각을 설득하기 시작하는데요.

그런 규평에게 용각은 어느 정도의 동조를 하는 한편, 박통이 사실 중앙정보부가 '이아고' 라는 개인 비밀 정보대가 있다는 사실을 흘리는데요. 오랜 혁명의 동지인 그들이 박통에게 여태 보여준 충성에 대해 의심을 하며, 용각은 규평에게 "왜 우리가 혁명을 왜 했을까"라며 묻기도 하였죠.

결국 용각으로부터 회고록을 받으며, 임무를 수행한 규평은 다시 청와대로 돌아와 박통에게 이를 보고하는데요. 박통과의 훈훈한 분위기에 규평이 뿌듯해하는 것도 잠시, 청와대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이 미국이 청화대의 대통령 집무실에 도청을 한 것을 빌미로, 규평을 몰아세우기 시작하는데요. 그렇게 박통을 중심으로 규평과 상천의 신경전은 시작됩니다. 시간이 지나며 박용각을 납치하여 살해하는 과정, 부마민주항쟁 그리고 계엄령 선포 등을 통해 점차 상천은 박통의 신임을 얻게 되는데요.

반면 규평은 용각이 말했던 이아고의 존재 그리고 박통에 의해 은밀히 진행된 자신에 대한 감시 명령으로 인해, 점차 위기감과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규평은 박통과 상천의 술자리를 몰래 도청하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박통이 "자기 친구도 죽인 백정 놈"이라며, 자신을 쳐낼 것임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분노한 감정을 참아내고 동시에 결연한 표정을 짓는 규평은, 과연 어떠한 선택을 내리게 될까요?

인물 심리에 담긴 역사적 사건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실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인 10.26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첩보 누와르 영화입니다. 대통령이 시해되기 전 40일 동안의 일들을 사건의 주도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입장에서 풀어내고 있죠. <남산의 부장들>은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계가 암울한 2020년에 개봉했음에도, 약 400만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나름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는데요. 그 배경에는 배우들의 열연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등 많은 배우들이 실제 인물들의 싱크로율을 따라잡기 위해 미친 연기력을 뽐냈기 때문이었는데요. 이에 대해 우민호 감독은 "일부러 연기 잘하는 배우들만 뽑았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혔죠.

또한 영화가 흥행을 하게 된 비결로는 우민호 감독의 차갑고도 예리한 연출이 꼽히기도 합니다. 전작 <내부자들>이나 <마약왕>이 다소 뜨겁고도 거친 느낌이 다분했다면, 이번 작에서는 유머를 완전히 배제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결말까지 긴장감을 고조시켰는데요.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건 중 하나를 다룬 만큼, 영화는 최대한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를테면 사실과 창작을 교묘히 섞는 것이죠. 실제 사건의 시간을 다르게 정리한다던가, '김재규'라는 실명을 '김규평'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활용하는 등으로 말이죠.

더불어 10.26 사건을 포함한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사실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이에 가담한 인물 심리만을 조명하는 우민호 감독의 선택은 평단에서 '현명했다'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특히 불안과 갈등이 지속되는 주인공 규평의 내면을 아주 깊게 다루며, 극을 긴장감 있게 이끌고 가는 원동력으로 활용하죠. 따라서 <남산의 부장들>은 일반적인 정치•역사 영화라기보다는, 권력과 인간성의 복잡한 관계를 그리는 심리 영화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인즈 코헛의 자기 심리학

이러한 심리는 사실 주인공 규평만이 아닌, 박통을 포함한 모든 '부장들'에게서도 나타나는데요. <남산의 부장들>에서 권력과 욕망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박통과 '부장들'간의 관계를 조명해야 합니다. 이들의 관계와 심리 기저에 대비해 보았을 때, 흥미로운 이론이 바로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의 '자기심리학'(Self Psychology)입니다.

님은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우리는 마치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듯한 착각에 빠져있는 사람을 두고 나르시시스트라고 칭하곤 하는데요. 흔히 지나친 자기애로도 번역되는 나르시시즘, 역시나 많은 정신분석학자들도 자기애를 병리적인 문제로 이해하며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합니다. 그러나 자기심리학은 다른데요. 자기심리학의 시작은 바로 '자기애'이며, 사람이 심리적으로 만족감을 느낄 때도 자기애를 느끼는 순간이라고 주장합니다.

자기심리학을 고안한 하인즈 코헛은 초년기에는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자그문트 프로이트(➡️ 프로이트편 보러 가기!)의 이론에도 굉장히 충실한 사람이었는데요. 그러나 그는 곧 프로이트의 이론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프로이트가 바라보는 사람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으며 성적인 충동을 줄곧 느끼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간(guiilty man)'이었다면, 코헛이 바라보는 사람은 '비극적인 인간(tragic man)'이었습니다. 평생 자신이 왜 살아가는지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자기 인생을 활기차게 꾸려나갈 수 없는 현대인이었죠. 기존의 정신분석학은 인간이 앓고 있는 신경증과 같은 현상을 분석하고 연구했다면, 코헛의 관심사는 인간의 내면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주변인의 공감과 지지를 통해 자기애를 느끼고 완전한 '자기'(self)를 형성해야 한다는 자기심리학을 고안하게 되었죠.

이상화된 단 한 사람

자기심리학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애적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스스로 충족하지 못하고, 항상 타인을 통해 만족되어야 하는데요. 이때 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중요한 누군가를 '자기대상(selfobject)'이라고 칭했습니다. 원래 '자기-대상'이란 본래 유년기에 아이가 필요로 하는 양육자를 뜻했습니다. 그러나 코헛은 아이가 '대상'들을 심리적으로 마치 '자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발견합니다. 대상이 자신의 기능을 수행할 경우 마치 자신의 손과 발과 같이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는 것이죠. 따라서 코헛은 자기의 부분으로 경험되는 특정한 대상들을 '자기-대상'이라고 칭했다가, 대상과 자기와의 합일성을 더욱 부각하기 위해 하이픈('-')을 빼, '자기대상'이라고 칭하게 됩니다.

이렇듯 자칫 자기대상은 유년기 시절에만 이뤄지는 것으로만 파악될 수 있지만, 코헛은 죽기 직전까지도 사람은 정서발달은 완료되지 않으며 항상 자기대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사람은 늘 이해되는 느낌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으며, 그것은 '이상화 부모원상(idealized parental imago)'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안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이상화된 대상"에게 인정받거나 공감받음으로써 총애, 존경, 일체감과 같은 경험을 느끼게 된다고 보았죠.

이러한 맥락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박통과 '부장들'과의 관계에서 뚜렷이 발견됩니다. 영화 내에서 부장들이 어렸을 적에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을지는 소개되지 않지만, 성인이 된 그들이 이상화된 자기대상을 찾았음은 분명합니다. 젊을 적에 자신들이 가담한 혁명을 이끈 리더이자 현 유신정권의 1인자, 바로 박통이죠.

충성심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영화 속에서 부장들의 충성심은 사뭇 굉장히 지나치게 묘사됩니다. 전 중앙정보부장인 용각이 규평에게 이아고의 존재를 전달해 줄 때에도, "나 말고 각하 뒤에 숨어서 단물 빨아먹는 마누라 놈이 따로 있었다고! 너하고 나하고 머슴 짓한거야, 규평아"라고 말하는데요. 이와 같이 <남산의 부장들>은 박통과 그의 수하들의 관계를 단순히 권력의 상하 구조, 그 이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규평이 임무를 완성하고 돌아와 박통과 술자리를 가질 때에도, 규평은 단순히 상사에게 인정받는 기분 이상으로 묘한 향수를 느끼기도 합니다. 또한 박통이 처음 용각을 내칠 때에도 용각의 비는 모습은 마치 자신의 추락이나 죽음을 두려워한다기보다는, 그에게서 떨어지기 싫은 모습처럼 보이죠. 심지어는 규평과 충성경쟁을 펼치는 경호실장 상천 또한 단순한 간신배가 아닌, 진심으로 박통을 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이렇듯 박통에게 애걸복걸하는 부장들의 모습은 그들이 박통을 이상화된 부모원상으로 인식하였음으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자기심리학에서는 이상화된 부모원상 즉 자기대상과의 일체감을 통해, 자신의 자기애를 충족시키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코헛은 특히 자기가 손상된 사람들의 행동 양상을, 오직 관심과 인정을 얻기 위해 자기대상을 찾는 '거울-갈망성격'(mirror-hungry personalities), 특권이나 도덕적 위업 등 존경할만한 요소를 가진 자기대상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이상화-갈망 성격'(ideal- hungry personalities), 자신의 의견이나 가치감 등을 확인시켜주는 자기대상을 찾는 '분신-갈망 성격'(alter-ego hungry personalities)등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같습니다. 자기대상에게 일종의 자기 투영을 하는 것이죠.

정보부장이라는 자리는 높은 사회적 위치이기 이전에, 박통의 신임을 얻는 자리입니다. 그들에게 박통은 마치 국가와도 같으며 어쩌면 신보다 높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박통을 통해, 각자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려고 합니다. 인물들이 추구하는 욕망은 각자 다르기에, 당연히 박통과의 관계에도 이는 반영됩니다. 단적으로 상천은 특유의 급진적인 성격으로 인해, 박통에게 계엄령을 통해 대한민국 청와대의 힘을 과시하려 합니다. 한편 몽상가적 성격을 가진 규평은 온건주의적 민주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어, 박통을 바꾸어 그러한 자신의 이상을 이루려고 합니다. 전자의 경우가 분신- 갈망 성격이라면, 후자의 경우는 이상화-갈망 성격이라고 볼 수 있죠.

박통과 불통, 그들이 야기한 분노들

이러한 인물들의 행태에 대해 자기심리학은 '이중 축자기'로 설명합니다. 자기대상과의 관계 경험을 통해, 자기는 '포부'와 '이상'이라는 두 가지 축을 가지게 되는데요. 코은 자기대상과 관련된 자기주장(포부) 대 이상화된 자기대상을 향한 감탄(이상)이라 하면서, 이들을 '두 가지의 기본적인 심리적 기능들'이라고 지칭하였습니다. 이 두 개의 축은 일정한 긴장감을 가지고 있을 때, 건강한 심리구조가 잘 발현되는 것이죠.

반면에 자기대상과의 관계를 맺는 것에 실패할 때, 사람은 분노와 공격성을 가질 수 있는데, 코헛은 이를 정신병리의 일차적인 원인이라고 보았습니다. 자기대상과의 불통, 즉 원활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마치 자신이 불완전한 개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보았죠. 또한 앞선 이중 축자기가 연속적으로 결핍을 느낄 때, 사람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자기애성 행동장애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증상들은 자기대상들로 부터 손상된 경험으로 가지게 된 고통과 수치심으로부터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부정과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를 활용하게 된다고 말했죠. 더불어 지속적으로 자기대상과의 관계 맺기에 실패한다면, 폭력적인 성향이나 우울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영화 속 규평과 박통과의 관계에서 꾸준히 드러납니다. 규평은 꾸준히 박통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청와대 도청 사건, 박용규의 코리아게이트, 부마민주항쟁 계엄령을 지나오며, 지속해서 박통에게 불신만을 얻게 되는데요. 그 사이에는 박통 옆 부대껴있는 상천이 있었습니다. 박통을 향한 충심 그리고 박통을 통해 이루고 싶은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욕망을 가진 규평의 눈에는 상천은 장애물과 같았을 것입니다. 더불어 자신 또한 용각처럼 내쳐져 버릴 것이라는 불안감이 들며, 자존감과 통제감을 잃게 된 분노는 상천을 향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에게 손찌검을 날리고 "야 이 벌레 새끼야! 너 왜 여기서 사람 흉내 내? 여기는 네가 있을 자리, 그런 자리가 아니야!"라고 외치게 된 것이죠.

우리가 왜 혁명을 했습니까?

사실 이러한 규평의 모든 분노와 폭력적인 행태는 사실 규평의 이상 혹은 자존감을 위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 내내 규평은 자신의 품격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사람에게 협박을 하거나 심지어는 살해하는 과정에서도 규평은 꾸준히 자신의 머리를 정돈합니다. 이것이 상천에게 말했던 '사람의 인격'이나 '국가의 국격'일 수도, 진정한 민주주의를 몽상하는 '혁명가의 품격'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자기심리학의 관점에 따르자면, 일종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설명드렸다시피 규평은 이상화 부모원상인 박통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관철하려 합니다. 그러한 박통과의 관계의 실패는 곧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보호하고자 자신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분노의 감정이 올라와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나게 합니다. 이는 자기 자신도 당황스러운 것이기도 하죠. 이러한 당황스러운 순간마다, 자신의 머리를 정돈하는 규평의 모습은 불완전한 자기로 인한 폭력,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나 다시 원래의 품격을 지키고 싶은 방어기제인 셈이죠. 즉 그에게 폭력과 자존심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님은 혹시 오늘 뉴스레터 이전에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보셨었나요? 영화를 시청한 후 많은 관람객들은 몇 가지의 의문들이 가졌다고 합니다. '규평은 왜 박통을 살해하였나?' 그리고 '시해 후 왜 남산이 아닌 육본으로 갔는가?'가 대표적이죠. 어쩌면 이것은 영화 초반부터 용규가 그에게 던진 질문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왜 혁명을 하자고 했나?', "네가 하자고 해서 했지", "내가? 네가 아니고?". 용규와 규평은 반농담 삼아 말하긴 하였지만, 그 기저에는 더 이상 혁명을 한 깊은 의의 따위는 퇴색되었고, 오직 권력과 폭력만이 남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질문은 영화 내내 그의 머릿속에 맴돌다가, 10월 26일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그의 입에서 나옵니다. "각하, 왜 혁명을 하셨습니까?"라고요. 그는 스스로를 진정한 민주주의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박통으로 귀결되는 이상화된 자기대상이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라는 것을. 자신은 폭력을 행한 후에 방어기제를 펼친다는 것을. 그렇기에 폭력은 품격 있을 수 없으며 더욱이 혁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권력은 무너지고 사람만이 남았다

-Youtube, 쇼박스 SHOWBOX, 남산의 부장들 – 도청 (7/10) | 이병헌 이성민 이희준, 2021-

님은 미셸 푸코(Paul-Michel Foucault)의 판옵티콘(panopticon)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푸코는 권력, 지식, 주체성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구조를 탐구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현대사회의 권력과 형벌 제도에 대한 이해를 위해 판옵티콘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판옵티콘은 'pan' 'opticon' 즉 '모두' '본다'라는 뜻으로, 극소수의 한 명으로도 원형으로 만들어진 감옥의 모든 죄수들을 감시할 수 있는 감시 시스템을 뜻하는데요. 푸코에게 있어, 권력이란 단순히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압력적인 권력이 아니었습니다. 권력의 작용은 감옥뿐 아니라, 학교나 군대 등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발견될 수 있는 일이라는 면에서 일종의 메커니즘과 같았습니다. 판옵티콘과 같이 작동되는 권력 아래에서, 각 개인은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는 의식에서 스스로 법률을 따르게 됩니다. 현대사회에서 감시란 권력의 본질이었죠.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이러한 '감시'는 아주 중요한 메타포로 작용합니다. 영화 속 감시의 주체는 지속해서 변해갑니다. 정보부장으로서 항상 감시를 일삼던 규평이 사실은 박통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대한민국의 권력 구조의 현주소를 의미합니다. 무소불위의 중앙정보부장마저도 결국은 박통의 지휘 안에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죠.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처음으로 규평이 곤란해진 사건이 바로 미국의 청와대 집무실 도청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박통 또한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박통이 그렇게도 미국에 화를 내었던 것이죠. 이렇듯 '감시'를 위주로 규정된 권력 구조는 영화 후반부부터 전위되기 시작합니다. 바로 규평이 박통과 상천의 술자리를 도청하면서부터였죠. 이후로 규평은 박통을 살해하며, 대한민국 권력이 태동하기 시작합니다. 푸코의 이론에 따라, 감시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사회의 권력과 영화 내부의 권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죠.

영화에는 '감시'외에도 또 다른 메타포가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발'이죠. '감시'가 국가의 기능 그리고 권력의 본질을 뜻한다면, '발'은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실존을 의미합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발'은 용각이 죽기 전에 처음 등장합니다. 그는 암살당하기 전, 양말만 신고 숲길에서 도망쳐와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발을 바라봅니다. 먼 이국의 땅,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대한민국의 2인자였던 자신의 최후를 확인하는 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영화에서 '발'은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10월 26일 박통 시해 후에 등장합니다. 사건의 주체인 규평의 발이죠. 규평은 박통을 살해한 후, 품격을 지켜 걷다가 상천의 피를 밟고 엉거주춤 넘어집니다. 그렇게 규평의 양말에 피가 물들게 되죠. 이후 참모총장을 데리고 차로 이동하던 중, 규평은 자신이 구두 한 쪽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만큼 여태 긴장하고 있었다는 증거이자, 참모총장이 규평이 어딘가 수상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구두가 벗겨지고 드러나는 상천의 피입니다. 이전에 용각의 발에 물든 것이 자신의 피였다면, 규평에 물든 피는 타인의 것입니다. 즉 민주주의 이상주의자도 아니고, 혁명가는 더더욱이 아닌, 그저 한 명의 살인자로서의 자신의 실존을 마주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상에서 규평과 용각은 상시적으로 대칭됩니다. 정보부장이라는 자리를 가졌으며 똑같이 박통에게 버림받은 부장들. 비록 자신이 죽였지만, 용각이 맞이한 결말은 규평에게는 남다른 의미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피로 젖은 발을 가진 두 사람은 자신의 발을 보고 같은 깨달음을 얻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저 살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보통 사람,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라고 말이죠. 어쩌면 이러한 규평과 용각의 피 묻은 발은 영화 <서울의 봄>(2023)의 복선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규평이 그토록 바랐던 진정한 민주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이죠.

오늘의 de tour의 길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님은 오늘 <남산의 부장>편을 보면서 어딘가 위화감을 느끼진 않으셨나요? 아무래도 영화의 내용상 계엄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었기 때문이었을 텐데요. 최근 대한민국은 45년만에 비상계엄을 또다시 경험하였는데요. 이전에 이뤄진 비상계엄 또한 영화가 다루는 10.26 사건 이후 내려진 비상계엄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또 다른 감회가 드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최근에 이뤄진 비상계엄이라는 점 외에도 두 계엄의 국면은 공통점을 가집니다. 일부의 소수 정치권력자들의 관계의 여파가 국가의 운영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그러한데요.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창작이 담겨 있는 누와르 영화 <남산의 부장들> 그리고 이번 계엄. 이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시나요? ' 피드백 하러 가기 '를 통해 님의 생각을 전달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