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과 de tour, 우리의 스물다섯 번째 발걸음이에요.

 님은 건축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매일 건물 안에서 살아갑니다. 잠을 자는 집, 일하는 사무실, 여가를 보내는 카페나 영화관까지. 하루의 대부분이 건축물 안에서 흘러가죠. 그래서 건축은 종종 ‘그저 머무는 공간’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건축은 내 삶이 펼쳐지는 ‘무대’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죠.

 실제로 건축은 단순히 ‘기능’만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영화가 컷을 통해 장면을 전환하듯, 건축은 설계를 통해 우리의 시선을 유도하고, 동선을 짜며, 풍경을 구성합니다. 이처럼 건축은 여러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구축하는 행위로서, 기능뿐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입니다. 또한 단지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이의 생각과 철학도 담겨 있다는 점까지 생각해보면, 건축을 충분히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처럼 건축의 예술성을 영화적 언어로 치밀하게 담아낸 작품이 있습니다. 작년 말에 개봉되어 온갖 영화상들을 휩쓴 영화, 바로 브래디 코배 감독의 <브루탈리스트>(2024)이죠. 오늘은 건축과 예술을 넘나드는 시네마, <브루탈리스트>를 색다르게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아틸라의 아메리칸 드림은 라즐로에게도 유효했습니다. 나치 정권의 아우슈비츠를 떠나 닿은 미국은 마치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죠. 마침 라즐로는 부유한 기업가의 아들, 해리 밴 뷰런의 의뢰를 받아 그의 아버지 해리슨 밴 뷰런(가이 피어스)의 서재를 비밀리에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됩니다. 라즐로는 해리슨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고서들을 보관하기에 적절하며 또한 미적으로도 완벽한 공간을 완성하죠. 하지만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해리슨은 프로젝트 자체에 불쾌감을 표하고, 약속했던 대가도 지급하지 않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라즐로는 자신의 혈육인 아틸라에게도 쫓겨나게 되죠.

 그로부터 3년 후,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살아가던 라즐로 앞에 뜻밖의 인물이 나타납니다. 바로 해리슨입니다. 시간이 흐르며, 라즐로의 서재 리모델링은 건축계에서 재조명받았고, 이에 감명을 받은 해리슨이 직접 라즐로를 찾아온 것이었죠. 그는 과거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고, 파티에 그를 초대해 삶과 예술에 관한 깊은 대화를 나눕니다. 이후 라즐로에게 감명받은 해리슨은 죽은 어머니를 기리는 의미로 커뮤니티 센터를 짓고자 하며, 그 설계를 라즐로에게 맡깁니다.

 80만 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서, 일은 점차 복잡해집니다. 당초 하나의 건물로 계획된 센터는 해리슨에 요구에 따라 도서관, 극장, 체육관, 예배당을 포함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확장됩니다. 이 과정에서 해리슨의 실용주의와 라즐로의 완벽주의가 충돌하기도 하죠. 라즐로는 해리슨의 도움으로 아내와 조카를 미국으로 데려오지만, 상황이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아내 앞에서 은근히 라즐로를 무시하는 해리슨 그리고 조카 조피아를 노리는 해리까지. 이방인으로서 처절하고 무거운 삶이 지속되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건축 자재를 실은 기차가 탈선하는 사고까지 벌어지며 공사는 중단되고, 라즐로는 해리슨에게도 내쳐지게 되는데요. 과연 라즐로는 이 낯선 땅에서 자신만의 정신을 담은 건축물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최근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사 중 하나인 A24가 배급을 맡은 데다, 총 3시간 34분이라는 이례적으로 긴 러닝타임이 공개되면서 더욱 큰 화제를 모았죠. 영화는 1막과 2막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 사이에 약 15분 정도의 인터미션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보통 오페라나 콘서트 같은 무대 예술에서 사용되는 짧은 휴식 시간이 영화에 적용된 사례는 드물기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끌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긴 상영 시간과 인터미션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는데요. 하지만 실제로 영화를 접한 관객들은 긴 러닝타임이 오히려 주인공 라즐로의 삶에 깊이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늘어지거나 지루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마치 라즐로가 설계한 브루탈리즘 건축처럼 단단하고 묵직한 시네마적 경험을 선사한다는 반응이 많았죠.

 영화의 제목과도 큰 연관이 있는 브루탈리즘은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유행했던 건축 양식으로, 거대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영화는 이러한 건축물을 하나씩 쌓아 올리듯, 건축가 라즐로의 생애를 따라가며 그의 이상과 정신적 구조를 차근차근 구축해나갑니다. 전쟁의 상흔과 냉혹한 이민 현실, 그리고 그 끝에서 형성되는 예술가로서의 정신까지. 영화가 전개되며 라즐로의 내면은 점진적으로 형상화됩니다.

 이처럼 <브루탈리스트>는 라즐로 토스라는 인물의 삶을 담백히 따라가는 서사 구조를 지녔기 때문에, 관객들은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한 전기 영화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감독 브래디 코베는 실존 인물과의 연결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하고자 했으며, 실제로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사건은 허구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장-루이 코헨의 저서 <Architecture in Uniform>에서 전쟁 이후 복구 사업의 인간적 의미와 당시 건축과의 내적 연결성에 대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시대적 배경인 1950년대를 사실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당시 개발된 비스타비전 필름을 사용하는 등 형식적인 면에서도 치밀함을 기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결국 그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역대 최연소 감독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주인공 라즐로의 각진 건축물만큼이나, 날카로운 질문들을 우리 사회에 던지는 작품입니다. 디아스포라, 시오니즘, 아메리칸 드림, 문화적 폭력, 자본과 예술의 갈등 관계까지.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영화 안에서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죠. 이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선, 먼저 주인공 라즐로가 영화 속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호미 바바의 <제 3공간>(The Third Space) 즉 탈식민비평(post-colonial) 이론은 흥미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는데요.

 탈식민주의는 근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연구 흐름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서구의 보편주의는 오래전부터 ‘선교’와 ‘문명화’라는 이름 아래, 동양을 비롯한 많은 피식민 국가들을 열등한 존재로 규정해왔죠.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은 이러한 시각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피식민자들의 목소리를 회복하고자 비평을 전개해왔습니다. 이를 촉발시킨 대표적인 저작이 바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입니다. 사이드는 이 저작을 통해, 서구가 동양에 대해 일방적이고 우월한 시선을 유지해왔다는 점을 피력했습니다. 그러나 인도 출신의 문화이론가 호미 바바(Homi K. Bhabha)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이분법 구조 자체를 내부에서부터 전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바바는 기존의 탈식민비평은 아직까지도 서구가 만든 이항대립 관계의 연장선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꼬집었습니다. 식민지와 피식민의 관계를 지배자/피지배자의 대립으로만 묶어 설명한다면,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 식민주의로부터 독립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그는 에드워드 사이드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며, 식민 주체를 단일하고 고정된 존재로 보는 대신, 그는 그것을 양가적이고 유동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호미 바바는 혼종성(hybridity)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합니다. 식민 주체와 피식민 주체가 만날 때 문화 이식이나 강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복잡하게 얽히며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이 만들어진다는 개념인데요. 그는 이처럼 혼종성으로 인해, 기존의 이항대립이 해체된 ‘틈’에는 또 다른 중간범위가 생겨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곳을 제3공간이라 명명했죠. 제 3공간은 단순히 문화가 섞여 하나의 결과로 귀결되는 장소가 아닙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변화하며, 차이를 증식시키고 기존의 위계를 흔드는 과정의 공간입니다. 이곳에는 중심과 주변, 자아와 타자, 우월과 열등이라는 이분법적 경계가 희미해집니다. 경계가 모호해진 존재들이 머무르며, 고정된 정체성 대신 유동하는 정체성이 태어나는 자리죠.

 님은 혹시 다른 언어를 번역해보신 적이 있나요? 직접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번역을 통해 원문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번역은 없다”는 말처럼, 번역 과정에서는 반드시 어떤 내용은 상실되거나, 본의 아니게 왜곡되기 마련이죠. 호미 바바는 자신의 혼종성과 제3공간 이론을 전개하면서 번역(Translation)이라는 개념을 가져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번역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간 번역과 유사한 의미지만, 식민지 상황에선 또 다르게 작동합니다. 식민 지배자들은 번역을 통해 피식민지 문화에 자신들의 언어와 규범을 주입하고자 했습니다. 번역은 그들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기능했던 것이죠. 하지만 바바는 여기서 ‘번역 불가능성’에 주목합니다. 번역의 과정이란, 결국 차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며, 완벽하게 동일한 의미로 치환될 수 없다는 점에서 항상 어딘가 어긋나게 마련입니다. 바바는 바로 그 ‘어긋남’ 속에 새로운 의미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번역이란, 결국 기존의 언어와 문화가 그대로 옮겨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뒤틀리며,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과정이라는 것이죠.

 한편 바바는 식민과 피식민의 관계를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접근한, 굉장히 독특한 문화 이론가이기도 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개념이 바로 ‘양가성’(ambivalence)인데요. 본래 양가성이란, 하나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그 반대의 것을 바라는 모순된 심리 상태를 뜻합니다. 바바는 식민 주체와 피식민 주체 모두 서로에 대해 이러한 양가성을 지닌다고 보았습니다. 서로에 대한 끌림과 혐오를 동시에 느끼는, 저항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이중적인 태도가 있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식민 지배자는 피식민 주체를 처음 마주할 때 자신의 지배욕을 투사할 수 있는 타자로 인식하는 동시에, 이질적인 그들로부터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들은 피식민 주체가 자신들에게 편입되도록 문화를 주입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진정으로 자신들과 같은 지위에 서는 것은 경계하고 불안해하죠. ‘닮되 완전히 같지는 말라’는 이중적 태도, 그것이 바로 식민 지배자의 양가성이며, 불안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피식민 주체는 이 모순적인 요구에 그대로 따르지 않고, ‘흉내내기’라는 전략을 택합니다. 이를 바바는 ‘모방(mimicry)’ 개념으로 부르는데요. 애초에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피식민주체들은 그들이 요구하는 원본을 그대로 이행할 수 없습니다. 앞서 번역에서 설명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따라서 그들은 지배자의 문화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같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방식으로 반복합니다. 앞선 식민지배자의 양가심에서 나온 불완정성이 ‘거의 같지만’ 즉 이식 행위에만 중점을 두고 있었다면, 모방의 것은 고의적으로 ‘완전히 같지 않는’에 집중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미묘한 차이는 곧 지배자가 피식민 주체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음을 역설하며, 그들 권력의 불안정성을 형성합니다. 즉, ‘식민지적 흉내내기’로 시작한 모방은 결국 ‘저항적 흉내내기’로 전환되며, 아주 강력한 저항의 전략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이처럼 바바는 식민 지배자가 행하는 통합과 배제의 모순적 틈을 파고들어, 식민 주체의 불안한 면모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 틈 즉 지배자도 통제할 수 없고, 피지배자도 강요받지 않는 제 3공간에서 새로운 문화와 정체성이 탄생한다고 말합니다. 바바는 이 과정에서 예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요. 예술은 식민 주체의 자아를 흔들고, 혼종성과 양가성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로 새로운 언어와 형식을 창조하고, 억압된 서사를 회복하며, 전복 가능성을 품은 제3공간의 중요한 통로가 되어주는 것이죠.

 이러한 맥락에서 해리슨이 라즐로에게 커뮤니티 센터를 설계해달라고 제안하는 장면은 상당히 미묘하게 다가옵니다. 이는 단순한 의뢰가 아니라, 자신의 자본으로 라즐로의 예술세계를 소유하려는, 전형적인 미국식 사고방식의 발현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해리슨은 지역 주민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려는 공공적 의도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신의 사적 욕망이 깊이 투영된 공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센터의 이름이 ‘마가렛 리 밴 뷰런 센터’인 것도, 죽은 어머니를 기리겠다는 사적 감정과, 영향력 있는 자본가로서 향하는 사회적 책무를 드러내고자 하는 위선적 면모가 동시에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또한 라즐로에 한하여는 이 커뮤니티 센터는 자본이 예술을 소유하려는 시도이자, 미국이 가진 콤플렉스를 위계적으로 극복하려는 공간으로 작동합니다.

 한편 라즐로는 이 공간을 브루탈리즘 양식으로 설계합니다. 브루탈리즘은 불필요한 장식이나 과시적인 외형을 계급적 상징으로 보고, 이를 제거해 필수적인 구조와 형태만 남기는 건축 방식입니다. 주로 공공주택이나 관공서에 사용되는 이 양식은 수평적인 공간구조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위한 건축을 지향하죠. 또한 라즐로는 바우하우스 출신이라는 설정 또한 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의 기능적 실천’을 추구했던 바우하우스의 전통은, 해리슨의 사적 욕망을 철저히 배제하며 커뮤니티 센터를 그 본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갑니다. 해리슨이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근대를 상징하는 인물임을 감안하면, 이 건축은 곧 미국이라는 체제에 대한 디아스포라의 조용한 저항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또한 영화의 중심 사건인 ‘커뮤니티 센터 건축’은 라즐로 개인에게 있어서도 굉장히 의미있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커뮤니티 센터는 어떠한 외압이나 고난으로부터 불가침의 영역이며, 동시에 예술의 견고한 본질이 담긴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호미 바바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는 제3공간이자 ‘저항적 흉내내기’로서 모방의 장소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에필로그에 이르러, ‘마가렛 리 밴 뷰런 센터’가 사실상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재현한 공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반전됩니다. 겉으로는 미국 지역민들을 위한 공공시설로 지어진 듯 보이지만, 실상은 유대인 이민자 라즐로의 내면이 투사된 공간, 즉 자본주의 미국 위에 새겨진 이방인의 건축적 흔적이자 불완전한 타협물로 남게 되죠.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것이 있다면, 영화 <브루탈리스트>이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이든 예술가로서의 완성이든, 어느 것 하나도 완결 짓지 않은 채 미완의 형태로 남겨두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관람객들은 관객은 커뮤니티 센터의 용도와 의미, 영화 이후의 이야기를 자꾸만 추측하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호미 바바가 말한 혼종성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내부적으로는 디아스포라 예술가의 삶이 새겨진 건축물이자, 영화 외부적으로는 관객들로 하여금 새로운 의미가 끊임없이 창조되는 혼종적 공간의 형상화인 셈입니다.

 님은 예술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흔히 예술을 예술가의 내면을 외부로 표출하는 행위로 이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과는 다른 접근도 가능합니다. 예술은 말보다 침묵을 통해 표현된다는 관점이죠. 이 흥미로운 관점은 철학자 조르주 아감벤의 미학 이론에서 출발합니다. 오늘 살펴본 호미 바바의 이론처럼, 그의 철학도 경계와 모호성, 중첩되는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아감벤의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호모 사케르(Homo Sacer)’입니다. 고대 로마 법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신성하면서도 저주받은 존재’를 뜻하죠. 호모 사케르는 살해당해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으며, 종교적 희생물로도 쓰일 수 없는 자. 즉 인간의 법과 신의 법 모두에게서 추방된 존재입니다. 그런데 아감벤은 이들이 단순히 배제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의 경계 바깥이자 그 영향 아래에 놓여 있는 이중적 존재라 설명합니다. 법 밖으로의 추방령을 법으로 명령받은, 배제와 포함의 모순적인 경계에 선 존재. 따라서 그들은 공동체에서 밀려나, 그 어떤 체계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으며, 인간이 인간으로 규정되지 않는 비식별의 영역에 머무르게 되죠.

오늘의 de tour 길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님은 최근 어떤 국제 이슈에 주목하셨나요? 요즘 가장 이목을 끌고 있는 사건은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다시 불거진 군사적 충돌과 휴전입니다. 워낙 중대한 사건이다 보니, 이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반응이 쏟아졌죠. 정치적 이해관계와 군사적 대응이 교차하며, 누구는 정의를, 또 누구는 응징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격렬한 갈등의 이면에는 사실 아주 오래도록 쌓여온 감정의 균열과 역사적 상처가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이처럼 복잡한 국제적 균열을 감성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외교적 적과 아군, 이분법적인 접근으로만 여겨지는 현 시대에, 어쩌면 가장 필요한 감수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즉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접근보다는 영화를 통해 감성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방식이죠.

• Brady Corbet, <The Brutalist>(2024)

• Directed by: Brady Corbet
• Written by: Brady Corbet, Mona Fastvold
• Distributed by: Brookstreet Pictures, Kaplan Morrison
• Cast: 에이드리언 브로디, 펄리시티 존스, 가이 피어스 등
• Running Time: 3h 24m
• OTT Service: Watcha | Wavve | Apple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