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과 de tour, 우리의 스물아홉 번째 발걸음이에요.

 님은 인간의 3대 욕구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식욕, 성욕, 수면욕. 우리는 흔히 이 세 가지를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 부르곤 합니다. ‘이틀 동안 잠 안 자기 vs 이틀 동안 밥 안 먹기’ 같은 밸런스 게임에서도 자주 등장하죠. 그런데 의외로, 이 3대 욕구를 정확히 정의한 이론은 없다고 합니다. 결국 인간의 욕망은 단순히 몇 가지로 나눌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거겠죠.

 그런데도 현실 속 우리는 이런 욕망을 쉽게 드러내지 못합니다. 대부분은 티 나지 않게 숨기거나, 조심스럽게 다루며 살아가죠. 하지만, 어쩌면 이 감춰진 욕망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잘 보여주는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전면에 드러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본즈 앤 올>(2022)이죠. 오늘은 이러한 본능에 충실한 매력적인 영화 <본즈 앤 올>을 흥미롭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매런은 자신이 이터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어릴 적 베이비시터를 해친 이후, 아버지가 철저히 그녀를 통제하며 비밀을 감춰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친구 집에 간 그날, 매런은 자신도 모르게 충동을 드러내고 맙니다. 성적인 긴장감이 흐르던 순간, 친구의 손가락을 물어뜯어버린 것이죠. 사고 이후, 아버지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며 매런을 떠납니다. 대신 카세트테이프를 남기는데, 그 안에는 매런의 어머니 역시 이터였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매런은 그렇게 어머니를 찾아 정처 없는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어머니를 찾는 과정에서 매런은 이전에는 마주칠 수 없었던 다른 이터들과 조우하게 됩니다. 먼저 만난 이는 중년 남성 설리(마크 라이런스). 그는 아직 이터로서 서툰 매런에게 여러 규칙을 알려주며 도움을 줍니다. 설리는 특히 예민한 후각을 이용해, 곧 죽을 운명에 놓인 사람들 곁을 맴돌다가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식인을 행하는 독자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었죠. 그러나 점차 설리에게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낀 매런은 그를 떠나고, 곧 청년 리(티모시 샬라메)를 만나게 됩니다. 리 역시 자신만의 원칙을 지니고 있었는데, 바로 가족이 있는 사람은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매런은 리와 동행하며, 같은 이터로서의 고통과 외로움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점점 이끌리게 됩니다.

 그렇게 긴 여정 끝에 매런은 마침내 어머니를 찾지만, 그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정신병원에 갇힌 어머니는 이미 두 손을 먹어버린 상태였고, 매런에게조차 “너와 나같은 괴물은 사랑을 할 수 없다”라며 그녀를 죽이려 들었기 때문이죠. 그런 어머니에게서 도망친 매런은 자신을 버린 아버지와 이터의 정체성에 무너져버린 어머니를 증오하며 혼란스러워하는데요. 더불어, 리와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깁니다. 함께 식사했던 동성애자 남성이 사실 가정이 있는 인물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죠. 매런은 리와 격렬하게 다투고, 리는 결국 “이터는 자신을 인정하거나, 아니면 자살할 수밖에 없다”라며 체념에 가까운 심정을 고백합니다. 절망한 매런은 결국 리의 곁을 떠나 홀로 길을 나서지만, 곧 그 앞에 다시 설리가 나타납니다. 처음부터 매런 곁을 맴돌던 설리. 과연 매런은 과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본즈 앤 올>은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습니다.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이어지는 ‘욕망 3부작’으로 잘 알려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배우 티모시 샬라메와 두 번째로 호흡을 맞췄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흥행 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식인을 하는 소녀가 비슷한 식성의 소년을 만나 사랑에 빠지며 여정을 떠나는 호러 로맨스물인만큼, 대중성보다는 예술성에 중점을 둔 영화이기 때문이었죠.

 구아다니노 감독은 인물의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하면서도, 광활한 자연의 풍경을 영상미 속에 녹여내는 연출로도 유명합니다. 이번 작품 역시 1980년대 미국 중서부의 황량하면서도 황홀한 풍경을 담아내며, 한 편의 로드무비처럼 전개됩니다. 떠돌며 정착지를 찾는 여정 속에서 주인공 매런은 결국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이 누구인지 마주하게 되는데요. 이런 점에서 <본즈 앤 올>은 성장 드라마의 성격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만의 가장 특별한 지점은, 인물들이 식인을 한다는 설정입니다.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는 ‘카니발리즘’이라는 낯선 소재를 정면으로 다루는데요. 카니발리즘은 스페인어의 카니발(canibal)에서 유래해, 동족 포식 즉 인간이 인간을 먹는 행동이나 풍습을 의미합니다. 식인 풍습이라니, 듣기만 해도 섬뜩하게 느껴지는데요. <본즈 앤 올>은 이러한 식인이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로맨스라는 아주 친숙한 소재와 결합시키려 합니다. 바로 인간의 욕구 중 식욕과 성욕을 동일시하는 관점으로 말이죠.

 대표적인 장면이 영화 초반, 매런이 동급생의 손가락을 물어뜯는 순간입니다. 평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매런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동급생 앞에서 무심결에 식인 행위를 저지르게 되는데요. 얼핏 단순한 충동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지점은 그 이상입니다. <본즈 앤 올>은 인간이 살아가며 느끼는 욕망을 탐구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식욕과 성욕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결국 영화가 묻는 것은 “무엇을 먹고 싶은가”나 “누구를 욕망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와 연결되고 싶으며, 그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더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이러한 독특하고도 낯선 주제를 이해하기에 적절한 이론가가 있습니다. 흔히 사랑의 사회심리학자라 불리는 에리히 프롬(Erich Fromm)입니다.

 님은 연애할 때 더치페이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더치페이는 연애를 둘러싼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죠. 흔히 우리는 관계를 “기브 앤 테이크”라고 말합니다. 주면 받아야 하고, 받았으면 돌려줘야 한다는 식이죠. 사랑에서도 이런 태도가 종종 드러납니다. 그런데 《사랑의 기술》(1965)에서 에리히 프롬은 이런 현대인의 사랑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합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사랑할 적절한 대상을 찾을 수 있을까’에만 몰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랑을 성취의 대상, 혹은 교환의 대상으로 오해하게 된다는 것이죠. 자신을 마치 ‘사랑받을 만한 상품’처럼 꾸미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손익을 따지는 태도가 생겨난다는 겁니다.

 프롬은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기술(art)이라고 봤습니다. 설렘 같은 감정은 순간적이지만, 진정한 사랑은 그것을 지속시키는 능력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사랑받을 능력”보다 “사랑을 주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사랑을 잘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우고 훈련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는데요.

 프롬의 이런 생각은 그의 인간관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이성이라 보았습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죠. 태어날 때 어머니와 분리된 경험, 그리고 언젠가 혼자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아는 존재. 그래서 인간은 평생 분리, 불안, 고독과 같은 감정을 느끼며 괴로워합니다. 그런 인간은 불안정한 자신의 존재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의탁할 존재를 찾게 됩니다. 즉 외부 세계나 특정한 사람과 합일을 꿈꾸게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합일에 실패할 때입니다. 프롬은 이 경우 인간이 병리적인 방식으로 도피한다고 보았습니다. 예컨대 자극적이고 파괴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만성적 권태, 다른 사람과의 결합을 피하고 애착이 심한 자폐적 성격, 물질적 안락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쾌락주의적 성격, 타인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자신을 미워하는 이기주의 등이 대표적이죠. 심지어 지금 사랑을 하고 있더라도, 그 사랑이 성숙하지 못하면 이 역시 병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상대를 지배하거나 소유하려는 사디즘적 사랑, 반대로 자기 자율성을 포기하고 지나치게 헌신하는 마조히즘적 사랑이 그 예입니다. 결국 이런 모든 병리적 사랑은 고립의 불안을 피하려는 일방적이고 미숙한 방식에 불과하다고 프롬은 지적했습니다.

 프롬은 이러한 병리적 사랑이 나타나는 이유를 ‘실존적 이분성’이라는 인간 고유의 심리로 설명합니다. 그는 인간에게 두 가지 상반된 욕구가 공존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로 살고자 하는 욕구, 다른 하나는 안전과 보호를 얻고자 타인에게 의존하려는 욕구입니다. 이처럼 모순적인 양면성을 실존적 이분성이라 부르며, 인간은 결국 이 두 욕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통받는 존재라는 것이죠. 이렇듯 자유를 갈망하며 떠돌다가도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은 인간의 모습은 <본즈 앤 올>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 매런과 리와 같은 이터들이죠.

 영화에서 이터들은 마냥 사람을 해치는 괴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밀려난 아웃사이더이자 소수자로 조명하는데요. 그들은 주기적으로 식인 행위를 펼쳐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식인을 해야 하기에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없고, 늘 쫓기듯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와 사랑을 꿈꾼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친밀해지는 순간 상대를 해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영화 속 이터들의 모습은 프롬이 말한 병리적 인간상과 닮아 있습니다. 설리는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고, 매런의 애정을 아이처럼 갈구하는 모습에서 자폐적 성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결국 매런과 리가 정착한 곳을 습격하며 그녀를 욕망하는데, 이는 이기주의적 성향으로도 읽히죠. 여정에서 만난 또 다른 이터와 그를 따르는 경찰관은 살인을 단순한 쾌락으로 소비하는 인물들로, 권태와 쾌락주의적 성격을 보여줍니다. 끝내 본능을 이기지 못한 매런의 어머니는 자신을 가두고 증오하는 태도 속에서 마조히즘적 성향을 드러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사람을 먹는 잔혹한 본능이 아니라, 한때는 그 누구보다 사랑을 꿈꾸었지만, 모두 사랑에 실패한 존재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결국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현실에서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사랑이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깊이 관계를 맺는 일인만큼, 두 사람의 사이에는 그늘지고 상처가 나는 구석들도 존재하기 마련이죠. 그렇게 의도치 않은 상처가 쌓일수록 실망과 불안은 커지고, 사랑은 병들어 가기도 합니다. 영화 속 이터들의 식인은 바로 이런 우리의 현실을 은유합니다. 타인과 관계 맺기를 갈망하면서도 끝내 상대를 먹어치우는 그들의 모습은, 고독을 이기지 못해 타인을 ‘자신의 일부’로 삼으려는 병리적 사랑의 영화적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프롬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터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의 다양한 존재 방식 중 하나일 뿐인 것이죠.

 님은 가장 완벽한 사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누군가는 연인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정열적인 사랑을, 또 다른 누군가는 서로를 존중해주는 차분한 사랑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모두 똑같은 마음이더라도,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제각기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죠. 그런 맥락에서 <본즈 앤 올>의 결말에서 매런과 리가 보여준 사랑은 그야말로 처절하면서도 숭고한 형태에 가깝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많은 관객들이 이들의 사랑을 두고 “궁극의 멜로가 아닐까” 떠올린 것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영화 <본즈 앤 올>은 제목처럼 결국 ‘본즈 앤 올’(Bones and All)이라는 결말로 닿습니다. 영화 중반, 매런과 리는 떠돌던 이터들로부터 “진짜 완벽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바로 뼈까지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본즈 앤 올’이죠.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두 사람은 섬뜩하고 불편한 기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끝에서 그 끔찍한 행위는 가장 완전한 사랑의 방식으로 전환됩니다. 영화 결말, 매런에게 집착한 설리가 그녀의 집에 찾아와 겁탈하려 하면서, 이를 막던 리는 치명상을 입습니다. 죽음을 직감한 리는 매런에게 자신을 뼈까지 남김없이 먹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싫어” 라고 외치는 매런에게 그는 간절히 속삭이고, 마지막 입맞춤으로 자신의 바람을 전하죠. 아마도 그는 그 누구보다 절실히 알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세상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녀에게 먹히는 것만이 두 사람만의 사랑의 표현이자 가장 완전한 합일이라는 것을. 그녀의 일부로 남아,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존재하는 것만이 지금 자신이 줄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을요.

오늘의 de tour 길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님은 어떤 마음으로 사랑을 시작하시나요? 설레는 마음? 조심스러운 마음? 우리는 대개 긍정적인 기대 속에서 사랑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본즈 앤 올>이 보여주듯,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많은 예술 작품들이 사랑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며,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감정인지 묻곤 하죠.

 오늘 다룬 <본즈 앤 올>과 유사한 국내 소설이 있습니다. 바로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를 이어온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이죠. 두 작품 모두 '먹는다'는 행위를 통해 사랑의 절대성을 표현하는데요.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갈망, 그리고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당하겠다는 다짐이 담겨있죠. 비슷하게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도 먹는 행위를 인간의 감정과 연결해 사유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음식을 통해 사랑을 나눕니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려 맛있는 것을 주문하죠. 하지만 먹는다는 것은 곧 누군가는 먹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사랑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다는 것은 동시에 상처를 줄 가능성을 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랑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죠. 님은 어떤 사랑을 하고 계신가요? 혹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사랑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신가요? 하단의  ' 피드백 하러 가기 ' 버튼을 눌러 의견을 남겨주세요.

• 루카 구아다니노, <본즈 앤 올>(2022)

• Directed by: Luca Guadagnino
• Written by: David Kajganich/ Based on: Camille DeAngelis
• Distributed by: Vision Distribution, Warner Bros. Pictures, Metro-Goldwyn-Mayer Studios Inc.
• Cast: 티모시 샬라메, 테일러 러셀, 마크 라일런
• Running Time: 2h 10m
• OTT Service: Apple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