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과 de tour, 우리의 여섯 번째 발걸음이에요. 

 님, 실험미술가라고 한다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보통 굉장히 괴짜스러운 모습들이 연상되실 텐데요. 물감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미술가의 모습은 예술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는 한편, ‘왜 이런 행동을 하지?’라는 의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실험미술은 우리에게 조금 먼 개념인 것 같기도 한데요. 오늘은 그러한 액션 페인팅의 대표자,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에 대해 색다른 접근으로 보다 깊이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한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는 사실 피폐하고 불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현대 미술의 대가’라는 타이틀을 가져간 만큼, 그는 미술계와 미디어의 날 선 평가에 평생을 시달렸습니다. 동시에 굉장히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기 때문에, 정신병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알려져 있죠.

 잭슨 폴록은 1912년 미국 와이오밍주의 코디에서 5형제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폴록의 유년기는 비교적 암울했는데요. 그의 아버지 또한 알코올 중독자였기 때문에, 툭하면 가족을 버리고 가출을 하곤 했습니다. 더불어 그의 어머니도 자식들을 완전히 방치하곤 했었죠. 이러한 유년기는 평생 폴록을 괴롭혔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떠나, 특히 성인기까지 정신적 • 정서적 혼란으로 그는 심리치료를 받기까지도 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당시 받았던 심리치료는 그의 미술 인생에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심리치료 이후 진행한 그의 전시가 미술계에 주목을 받게 되었고, 1949년 8월, <라이프>에 “잭슨 폴록은 미국의 가장 위대한 생존 화가인가?”라는 제목으로 단독기사가 실리게 되며, 폴록의 명성은 절정을 향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굉장히 아이러니한 대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죠. 

 액션 페인팅이란 미술가의 순간의 행위를 통해 우연적으로 미적인 효과를 얻어내는 회화 운동 중 하나입니다. 그중 잭슨 폴록이 선보였던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은 물감을 캔버스 위에 떨어뜨리거나 부어버리는 회화 기법인데요. 그는 유화물감을 깡통에 붓고는 그것을 막대기로 젓다가는, 이따금 허공에 저으면서 캔버스 주위를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마치 행위예술처럼 말이죠. 이것을 반복하는 동안 떨어진 물감들은 캔버스 위에 역동적인 선을 그려내었습니다. 따라서 캔버스에는 폴록의 몸짓으로 인해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선들이 빼곡히 채워지게 되었죠. 

 폴록은 이러한 작업의 비결을 몰입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는 액션 페인팅 작업을 할 때, 자신의 작업에 굉장히 집중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와 관련된 비하인드도 유명합니다. 1950년 야심찬 사진작가였던 한스 나무스는 폴록에게 접근해 그의 작업을 찍고자 했습니다. 이어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안한 나무스는 그날은 야외에서 작업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폴록은 작업실에서와 같이 편안하게 작업할 것을 주문받았습니다. 하지만 작업 행위에 몰입해 무의식을 표현해야 했던 폴록에게 감독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잔뜩 취해 “나는 가짜가 아니오"라고 나무스에게 말했다고 하죠.  

 이러한 폴록의 작업 방식과 관련해 살펴볼 수 있는 이론이 있습니다. 바로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의 FLOW 이론(Theory of Flow)입니다. 칙센트 미하이는 헝가리계 미국인 심리학자로, 우리에게는 익숙한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책의 저자입니다.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로 인해, 인간 마음의 부정적인 면에만 집중한 20세기 정신의학에 반성하자는 의미로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죠. 긍정심리학의 관심거리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은 행복을 느낄 수 있나?’이죠.  

 님은 여태 살면서 몰입감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아마도 많을 겁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몰입이란 단순히 “깊이 파고들거나 빠짐”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몰입이란, 좀 더 어떠한 집중된 흐름 즉 FLOW에 가깝습니다. 그가 이해하는 몰입은 우리가 어떠한 일에 몰두하거나 매혹되었을 상태에 느끼는 절정경험, 그리고 그것을 체험하게 하는 신비한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볼까요? 님, 우리는 단순히 어떤 업무를 보는 것을 넘어,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나 운동을 할 때 등, 다양한 순간에 몰입감을 느낍니다. 몰입에 빠진 순간, 우리는 마치 어떠한 물결에 정신을 맡긴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시간은 느리게 가고, 내 몸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 현실감각이 떨어지게 됩니다. 마치 피아노를 연주할 때, 건반 하나하나를 어떻게 누르는지 신경 쓸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연주의 흐름에 따라 몰입한 후에, 그렇게 연주가 끝나게 되면 우리는 어딘가 모를 성취감, 즉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이렇듯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통해 사람은 자아실현을 이루어 내고 성장하게 되며, 이러한 감각 속에 행복감을 느낀다고 주장하죠. 

 이러한 칙센트미하이의 FLOW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FLOW에 빠지고 난 후 최종적으로는 무의식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의식 상태는 그렇게 쉽게 도달될 수 있는 것은 아닌데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적당한 도전과제와 함께 완벽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합니다. 마치 세상을 우리의 통제 아래에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 하죠. 이렇듯 외부적인 모든 것들을 차단하고 나서야,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온전히 쏟아붇는 초집중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칙센트미하이가 처음 몰입 이론을 제시할 때, 많은 예술가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한 끝에 얻어낸 결론인데요. 당시 그는 예술가들 중 주로 화가들에 집중했었는데, 화가들은 그림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음식이나 물, 게다가 잠 조차 마다하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보였습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마저도 거부하는 화가들의 모습은, 그에게 신기한 현상이었는데요.

 심지어 그들은 외부의 보상이나 어떠한 자극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을 넘어, 그림을 그리는 자기 자신마저도 망각하기에 이릅니다. 무용수가 자기 자체가 춤이라고, 암벽 등반가가 자신이 바로 암벽이라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몰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은 인식하고 있지만 정작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 말은 즉 자아에 대한 인식이 없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의식의 상실’을 몰입 상태의 특징으로 규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에너지의 흔적을 남기는 폴록의 작업 방식에서는 예술가의 신체적 개입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폴록은 캔버스 위에서 떨어지는 물감을 들고 행위예술가처럼 손을 휘젓곤 했습니다. 심지어 재료도 물감뿐 아니라, 공업용 에나멜이나 담배꽁초, 먼지 등을 자유롭게 섞어 사용했습니다. 그는 누워있는 캔버스의 모든 방향에서 작업을 했으며, 또한 몸 전체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중력의 힘을 이용해 물감 자체의 점성을 조절하고 몸짓의 속도 등을 활용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도전했습니다. 폴록은 이것을 자주 “화면에 들어간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렇듯 그의 회화 작업은 캔버스 위에서 행해지는 폴록의 행위에 집중됐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위 외의 모든 외부•내부적 요소들을 부수적인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즉 폴록은 자신이 순수한 행위를 행할수록 자신이 순수하게 그려내고 싶은 내면을 꺼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대해 유명한 미국 평론가 로젠버그는 “행위 그 자체가 대상이 되는 상황의 회화“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액션 페인팅의 개념인 것이죠.  

 이러한 액션 페인팅은 FLOW 이론의 ‘자기목적적 경험’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칙센트미하이는 앞서 몰입상태의 특징을 ‘자의식의 상실’과 더불어 총 9개로 규정했습니다. 그중 마지막 특징인 자기목적적 경험은, 몰입 경험 혹은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고 최종 목적이 되는 단계를 말합니다. 앞선 8가지 측면이 다수 발휘되어야 다다를 수 있는 최종 단계인 셈이죠.

 자의식을 상실하고 무의식에 빠진 행위자에게 인식되는 것은 오직 “내가 이 행위를 하고 있다”정도 일 뿐입니다. 이러한 고도의 집중 단계에 이르면, 우리는 자신 내면에 내재되어 있던 능력이 발휘되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떠오르게 되고 또 실현됩니다. 따라서 몰입이 끝나고 무의식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면, 우리는 성취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몰입 상태를 경험했다는 것 자체에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즉 평생을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폴록의 삶에, 미술 작업을 통한 몰입 그리고 캔버스 위의 행위는 유일한 자아실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몇 없는 순간이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맞이하는 자신의 무의식, 즉 내면세계는 회화의 본질이 되는 것이고요.  

 칙센트미하이는 이러한 몰입의 원리를 우리의 의식 흐름의 메커니즘으로 제시합니다. 이를 그는 엔트로피와 니겐트로피의 작용으로 설명하는데요. 엔트로피란 무작위 혹은 무질서 상태를 의미하는 용어로써, 우주의 모든 것이 무질서를 향해 간다는 자연의 법칙입니다. 마치 풍화 현상 혹은 노화현상과 마찬가지입니다. 니겐트로피는 엔트로피의 반대편 극에 있는 개념입니다. 즉 질서를 뜻하죠. 우리는 평상시 자연상태와 마찬가지로 엔트로피의 상태에 머무릅니다. 우리의 마음은 정보의 무질서 상태에 놓여있으며, 생각은 두서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얽혀 있는 형태로 존재합니다. 몰입은 이러한 무질서한 뇌 의식의 흐름에 질서를 부여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동적인 세상에서 정적인 내면의 세계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잭슨 폴록의 것들은 다소 엔트로피의 영역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그의 작업은 기존의 구상을 완전히 철폐하고 자신의 무의식을 그 자리에 대체해놓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작품 또한 무질서하며 해체적으로 느껴지죠. 무질서한 것은 그의 생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평생 앓던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1956년 8월, 그는 친구들과 애인들을 데리고 음주 운전을 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의 나이 겨우 44세였죠. 

 폴록은 평생을 불안에 힘겨워하며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1953년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회화 제작 수를 줄이게 됩니다. 그마저도 3년 후, 자신의 작업에 매너리즘을 느끼고 모든 작업을 회화가 아닌 조형으로 전환하게 되죠. 이러한 폴록의 행보에 대한 당시 평단의 평가는 심히 갈렸습니다. 이렇듯 스타작가로써의 중압감 그리고 어릴 적 느꼈던 불안 때문에,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좁은 작업실에서만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를 대가의 반열로 올려놓은 기법이, 바닥에 캔버스를 누워 놓는 올오버 페인팅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합니다. 어쩌면 그에게는 바깥의 어려움에 직면하기보다, 작업실의 차디찬 바닥에 붙어, 더욱더 자신의 무의식에 심취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미국 미술의 황금기를 이끈 미국 현대 미술의 대가이자 평생을 알코올 중독자로 살아간 잭슨 폴록. 어떠한 것보다 무질서하고 마치 심해와도 같은 자신의 내면이, 그에게는 가장 따듯하고 질서정연한 공간이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잭슨 폴록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단순히 보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님, 맨 처음 물어봤던 질문이 기억나시나요? 실험미술가에 대한 질문을 드렸었습니다. 현대미술 작품들은 대중들에게 많은 공감을 받기 어렵습니다. 그중 폴록이 속한 추상표현주의는 “이건 나라도 그리겠다”라는 질타를 가장 많이 받는 장르이기도 하죠. 그것은 현대미술의 주안점이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몰입해 ‘보는’ 것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믿고 있는 세상은 가끔 다르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주변에 손 익은 물건이 고장 났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결별해야 할 때 등. 늘 익숙했던 것들에게 새삼 새로움을 느끼는 순간들입니다. 하이데거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내 “손안에 있”기 때문에 숨어있던 “그 자체로 있음”이 드러나는 순간일 것입니다. 예술가들이 관찰하고 싶은 것들이 바로 이것입니다. 의미 있는 세계에서 의미 없는 세계로 향하는 것. 그들은 그것을 인식하고 또 표현하여, 새롭게 의미 있는 세계로 재창조하는 것. 칙센트미하이 식으로 말하자면, 엔트로피에서 니겐트로피로 향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따라서 몰입 과정을 겪은 폴록의 작품은 겉보기에는 아닐지라도, 일정한 질서를 갖고 있는 것이죠. 무질서한 유영 끝에 얻은 혼란스럽기만 한 질서라니, 흥미롭지 않은가요?  

오늘의 de tour의 길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잭슨 폴록이 만든 새로운 질서는 꽤나 흥미롭습니다. 미술에만 몰두한 그의 삶은 많은 후대 미술가들에게 영감이 되었으며, 지금 우리들도 ‘몰입’이라는 키워드로 폴록을 비롯한 많은 실험미술가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죠. 님은 어떤가요? 오늘 뉴스레터를 통해, 현대미술에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었나요?  피드백 하러 가기 를 통해 의견을 전달해 주세요! 사실 크게 공감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예술이든 아니든, 어딘가에 굉장히 몰두하며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는 님, 자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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